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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작성자 : 이길호
2013-08-16|조회 1459
15일에 서울-대전경기를 아내와 중1인 딸과 함께 봤습니다.

저나 가족은 서울이나 대전의 팬은 아닙니다.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만 고향이 서울이나 대전, 충청도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응원하는 팀이 정해져 있지도 않습니다. 저는 축구를 좋아합니다만 K리그를 그리 유심히 봐 온 편도 아닙니다. 젊어서는 조기축구도 하고, 직장에서 축구팀을 만들어서 공도 자주 찼습니다만 빅매치가 있는 날에 어쩌다 경기장을 찾거나 방송으로 중계를 보는 정도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제일 좋아하는 스포츠를 꼽으라면 축구라고 합니다.

 

어쨌든 상암경기장에서 대전-서울 경기를 보게 된 건 순전히 딸의 방학숙제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어떤 스포츠든 보고 티켓과 사진을 첨부해서 제출하라는 방학숙제를 내서 말입니다. 저희의 집이 잠실이라 야구를 보러가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주변 친구들은 다 야구를 보러간다고 합니다. 야구는 표구하기도 어려우니 축구를 보러가자고 했습니다. 딸에게 축구는 야구, 농구, 배구 그 다음이었습니다.

 

K리그 팀과 선수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일단 예습을 좀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아내와 딸은 2002년에 멈춰버린 지식으로 내가 뭔가 이야기해 줄 것 같은 눈으로 쳐다봤습니다. 사진도 찍어야 했고... 할 수 있는 이야기란 게 서울은 4위이고, 대전은 18경기째 승이 없는 팀이고, 모기업이 따로 없는 팀이라는 것 정도였습니다.

 

첨에는 지켜보던 딸도 경기가 재미있어지는 지 재미있게 보고 있었습니다.

전반전이 끝나고 딸에게 대전이 불쌍하니 난 대전을 응원하겠다고 했더니 딸은 그러면 안된답니다.. 주변에 다 서울팬인데 잘못하면 맞아죽는다고 말입니다.

대전에서 골 찬스를 맞을 때면 나도 모르게 “슛~”이라고 외치면 딸이 눈치를 줍니다.

딸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으니 그래도 서울을 응원하겠다고 합니다.

2:2가 상황에서 인저리타임에 골이 들어가자 (서울출신인)아내는 벌떡 일어서서 박수치고 난리가 아닙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골이 들어가는 순간 허물어지듯 그라운드에 주저앉은 대전 선수들이었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내 표정이 안 좋았는지 딸이 경기 마치고 나가는데 아빠는 표정이 영 아니데....

딸에게 "나는 오늘부터 대전팬이다"라고 했더니 자기는 그래도 서울을 응원하겠답니다. 그래도 다음 경기에서는 대전이 이기기를 바란답니다. 아니면 다음다음 경기에서라도...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있을 터이지만 대전선수들 너무 열심히 뛰었습니다. 제가 아주 전문가는 아니지만 풀타임을 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압니다. 등산이야 오르다가 영 힘들면 걸음을 멈추면 되지만 축구는 굴러다니는 공을 쫒아 쉬지 않고 뛰어야 하는 운동이니 말입니다.

오늘 경기를 보고 우리 가족은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이 커졌습니다. 첨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던 선수들의 배치며 움직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귀 기울여 듣습니다. 선수들 이름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또 오자는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시합을 진행한 대전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놓친 몇 번의 아쉬운 찬스는 나와 내 딸에게 더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경기를 너무 재미있게 봤고, 경기를 재미있게 본 가장 큰 이유가 대전 선수들이 너무 열심히 뛰어준 덕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중 하나가 푸욜입니다.
푸욜의  “힘이 드는가? 오늘 걸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는 말은 종종 제가 책을 선물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써주는 글귀이기도 합니다.

오늘 대전 선수들은 이 글귀에 하나 부끄러움이 없는 시합을 보여줬습니다. 적어도 저와 제 가족에게는 말입니다. 그래서 너무 고맙습니다.


“대전 시티즌 만세”
박대용
어제경기로 대전이 많은 팬을 얻은것 같네요~
2013-08-16
김아름
제가 더 감사합니다 ㅜㅜ
물론 저는 대전팬의 대표도 아니거니와 대전팀과 관련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대전을 내팀으로 삼아 꽤 오래 동고동락해오고 있는 일개 팬일 뿐이지만요. 요즘 우리팀답지 않은 대전을 보면서 어지간히도 속이 썩었는지.. 길호님께서 울팀 넘 잘해줬다는 칭찬을 해주시는 걸 보니 제가 다 괜히 울컥해서 눈물이 날 거 같아요 ㅠㅠㅠㅠㅠㅠ 길호님께 그리고 가족분들께 울팀이 좋은 인상 준 것 같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경기해주겠죠 우리팀? 함께 지켜보자구요 ~_~
2013-08-16
김선우
맞습니다 팬들은 이기는경기도 원하겠지만 무엇보다 최선을다하는모습을 보고싶어합니다..! 부디
이 기세를몰아서 강원.대구잡고 SK팀까지잡길바라며 강등권탈출을 소망합니다ㅠㅠ
2013-08-16
오남균
멋진글 잘읽었습니다.
2013-08-17
전종구
감사합니다.선수들에게 전해 큰 위로와 함께 더더욱 파이팅할 수있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2013-08-19
최창규
아.. 왠지 내가 다 뿌듯..
201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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